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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분석

집값의 누명 - 서울시 천만 인구 붕괴의 진짜 이유

어제 한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서울시 천만 인구 붕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말하기를, 

"서울의 집값이 너무 비싸서 다 서울을 떠나는 거 아냐. 그래서 인구도 천만 이하로 떨어진 거고"

서울의 집값이 비싸서, 서울을 떠난 인구보다 들어오는 인구가 적어졌기 때문에 서울의 전체 인구가 감소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의 근거는 아래와 같은 언론 기사이다.



탈서울의 원인을 서울의 집값(전셋값)으로 지적하고 있다.

작년 중순, 언론에서도 연일 서울의 높은 집값(전셋값) 때문에 천만 인구가 붕괴되었다고 떠들어댔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일단 처음으로 천만 인구의 벽이 허물어진 2016년도의 데이터를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는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1)KB매매/전세지수의 차트와 2)인구수/세대수 차트이다. 



1) KB매매/전세지수 차트 :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2) 인구수/세대수 차트 : 인구수와 세대수의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1) 차트를 보면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상승했다. 2) 차트를 보면 인구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세대수도 3월 이후로 감소하는 추세로 보인다. 2016년 한 해만 살펴보면, '지속적으로 오르는 집값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고 있다'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2) 차트를 보면, 2016년 1월 10,018,537명에서 12월 9,930,616명으로 1년 사이 서울의 인구는 87,921명 감소했다. 보시다시피 서울의 인구가 감소한 것은 팩트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서울의 집값이 비싸서 인구가 줄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아래와 같다.

1) 서울의 비싼 집값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난다.

2) 타 지역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3) 그러나, 서울을 떠나는 인구가 더 많아서 결과적으로 서울의 인구수가 줄어든다. (왜? 서울의 집값이 비싸서 못오니까!)


이런 생각이 좀 더 발전하면, 

4) 인구감소에 따라 빈 집(공실)이 증가한다.

5) 공실을 견디지 못한 집주인이 싼 값에 집을 팔아서 집값이 하락한다.

6) 너도 나도 집을 싼 값에 팔아치우려고 난리가 난다.

7) 이 때가 서울에 집을 살 기회이다! 


이런 생각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내 친구의 생각이 이랬다.)


자, 그럼 이걸 실제 데이터로 검증해보자. 2) 차트의 세대수 증감을 확인해보면, 2016년 1월 4,190,415세대에서 12월 4,189,839로 576세대가 감소했으니, 위와 같은 생각이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잠시 하나만 짚고 넘어가보자.

1) 2016년 한 해 동안 감소한 서울의 인구수가 약 8.8만 명이다. 

2) 2016년 서울의 세대 당 인구수(인구수/세대수)의 평균은 약 2.4명이다.

3) 서울의 감소한 인구수 8.8만 명을 세대 당 평균 인구수로 나누면, 약 3.6만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즉, 인구수만 가지고 따져봤을 때,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의 세대수는 3.6만이 감소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고작 576세대만 줄어든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1), 2) 차트의 기간을 2013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로 늘려보았다.



1) KB 매매/전세지수 차트



2) 인구수/세대수 차트

2016년 한 해만 봤을 때와 달라진 점이 눈에 띄는가? 


첫 번째 차트를 살펴보면 전세가의 지속적인 상승이 눈에 띈다. 이 차트만 보면 서울의 전세가가 계속해서 올랐기 때문에, 높은 전셋값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났고, 그래서 서울의 인구가 천만 이하로 줄었다는 언론의 이야기가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차트를 보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대수의 변화이다. 2013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는데, 세대수는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고, 심지어 동일한 기간을 비교해봤을 때 약 2.4만 세대나 증가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드는데, 세대수는 되려 늘어났다. 이런 현상을 '서울의 비싼 집값'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서울의 세대 당 인구수가 줄어든 것이다.


서울의 비싼 집값을 감당 못해서 서울의 인구가 줄어든 것이 아니란 소리다. 비싼 집값을 감당 못해서 떠난 사람들의 빈 집은, 그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로 이미 채워졌다. 다만, 이전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한 가정(세대)의 인원이 4명이었다면, 이제는 3명, 2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서울의 인구수가 천만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얘기이다.

이 내용은 차트를 통해 살펴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아래는 위에서 언급한 2)번 차트에 세대 당 인구수 추이를 추가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세대 당 인구수가 보이는가? 


서울의 인구 감소는 비싼 집값 때문이 아니라, 세대 당 인구수 감소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결국 서울의 인구 감소는 핵가족화, 1인 가정의 증가와 같은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내 친구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런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천만 인구 붕괴', '비싼 집값', '물량 폭탄' 같은 언론의 자극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비판없이 받아들인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2018년 대세 하락론', '대한민국 부동산도 일본처럼 폭락한다'와 같은 주장들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썰'들 중 백미는 단연코 '서울 부동산 폭락설'이다. '서울 인구가 매년 줄어드는데, 거기에 2018년 공급도 엄청 많대, 결국 서울의 비싼 집값이 대폭락을 맞이할 거야'라는 일종의 확증편향적인 믿음을 가진 채로 서울의 부동산을 바라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